임종석 비서실장 컷오프 관련해 민주당 계파갈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뉴스가 연일 보도되고 있습니다. 특히 시스템 공천을 강조하던 이재명 대표 발언과 다른 뒷이야기들이 나오며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서울 중·성동갑 지역에서 예비후보로 뛰고 있던 임종석 국회의원 예비후보 자리에 전현희 전 위원장을 전략공천하며 컷오프된 상황입니다.
대체 어떤 일들이 있었기에 2선 의원에,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던 인물이 경선도 치르지 못하며 컷오프 되었을까요? 임종석 비서실장 프로필, 수상, 선거이력 등 정보를 알아보고 관련 이야기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목차
프로필 / 학력 / 고향 / 비서실장 이야기
지역구 / 선거구 / 수상 / 의원 이야기
평창동 / 컷오프 이야기
임종석
유명한 학생운동가 출신 정치인입니다. 전대협,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출신으로 16, 17대 국회의원을 지내고 박근혜 정부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 밑에서 서울 정무부시장을 지냈습니다.
서울특별시는 워낙 큰 행정구역에 수도인만큼 부시장이 행정1부시장, 행정2부시장, 정무부시장으로 1994년부터 구분되어 임명되고 있습니다.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캠프에 합류하며 이후 대통령비서실장 자리에 임명됩니다. 이전부터 줄곧 민주당계 정당에서 활동했기에 비서실장 퇴임 후에 1기 참모진들과 함께 더불어민주당으로 2019년 2월 복당 합니다.
당시 복당한 1기 참모진은 백원우 민정비서관, 남요원 문화비서관, 권혁기 춘추관장 등이 있습니다.
임종석 비서실장 프로필
본관 장흥 임씨
거주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창동
현직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이사장
가족 아내 김소희 자녀 딸
군대 병역면제 (수형)
종교 가톨릭 (세례명: 프란치스코)
키 176cm 혈액형 A형
소속 정당 더불어민주당 흰색 로고 여백
비서실장을 지내던 당시 '부통령급', '국무총리급' 비서실장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일부 '월권' 행위에 대한 비판이 있었습니다.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 자리 임명, DMZ (비무장지대) 시찰에서 국가정보원장, 국방부 장관, 통일부 장관과 함께 했던 모습에서 당시 손학규 대표가 "비서실장이 나서는 자리가 아니다. 자기정치를 하려면 자리에서 물러나라."라며 비판했습니다.
더욱이 당시 DMZ 시찰 방문 영상이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왔는데 감시초소 GP 통문의 고유 번호, 위치 등 군 정보가 들어있어 보안 정보가 유출되었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이전에 청와대에서 "북한 GP 초소, 국군 무기류, 통문 숫자 등은 공개하지 말아 달라."라며 언론에 요청한 적도 있었고 국방보안업무 훈령에 관련 내용 촬영 자체가 금지되어 있어 많은 비판을 샀습니다.
이언주 의원은 이에 대해 '국기문란 행위'로 말하며 어떻게 이런 일들이 일어났고 통제되지 않았는지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비판하고 "우리 국민들은 그의 과거 주사파 경력 때문에 대북문제와 안보에 깊이 관여하는 것에 불안한 점이 있다."라며 지적했습니다.
임종석 나이
생년월일 1966년 4월 24일 만 나이 57세
1966년생 말띠이며 생일 4월 24일로 별자리 황소자리입니다.
임종석 고향
고향 전라남도 장흥군 장흥읍 금산리 신기마을
태어난 곳은 전라도 장흥군입니다. 하지만 유년시절은경기도 안양시, 서울에서 보내며 자랐습니다. 초등학교도 안양국민학교 입학 후 서울 묵동국민학교로 전학했습니다.
임종석 고등학교 시절까지 쭉 서울에서 생활했고 대학교 역시 한양대학교에 입학하며 서울 토박이와 다름없이 자랐습니다.
임종석 학력
서울묵동국민학교
태릉중학교
용문고등학교
한양대학교 무기재료공학
임종석 대학 졸업을 10년 만에 했습니다. 86학번으로 입학해 1995년 8월 코스모스 졸업을 했는데, 이유는 한양대학교 무기재료공학과 1학년 때 노래패에 가담하며 운동권에 뛰어들며 이후 수형 생활, 감옥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1988년 한양대학교 총학생회장이 되고 이듬해 한총련 전신 전대협 3기 의장을 맡으며 학생 운동권의 중심이 됩니다. 그러면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 5년형의 실형을 선고받아 수감됐고 3년 6개월 만에 특별사면으로 풀려납니다.
징역을 살던 중 1990년 임수경의 '밀입북'을 도운 혐의까지 함께 확정되기도 했습니다. 북한에서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을 개최하며 조선학생위원회 명의로 전대협에 초청장을 보냈습니다.
임수경 씨는 공직자 집안에서 태어나 당시 집에 컴퓨터가 있을 정도로 부유한 집에서 태어난 인물이었습니다.
이전에는 일절 운동권과 접촉이 없을 만큼 부유한 집안이었지만 대학생이 되며 운동권과 접촉이 생기고 특히 오빠의 군 복무 중 의문사 사건으로 본격적으로 운동권에 뛰어들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전대협 대표로 당시 탈냉전 분위기를 타고 일본→서독 →동독 →소련 루트를 통해 9일 만에 평양에 도착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돌아갈 때는 판문점을 통과해 가겠으며 남측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죽음을 각오한 투쟁도 불사하겠다."라고 말했고 전 세계 언론사들이 관련 소식을 보도했습니다.
입북 후에 북한 조선학생위원장과 함께 '남북청년학생 공동선언'을 발표하며 당시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준 사건입니다. 집에는 남해에 놀러 간다고 말한 대학생이 북한에 있는 것이 알려졌으니...
하지만 당시엔 생각보다 관련 사건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평범한 대학생도 들어가네?', '어린 게 사고 쳤구나'라며 반응하는 것이 다수였다고 합니다.
북한에서는 작고 당돌한 여성이 캐주얼한 복장으로 통일을 외치고, 젊은 여대생 존재 자체가 이미 충격 그 자체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일하던 사람들이 그녀를 보기 위해 길로 몰렸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남한에 조금 더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되는 사건이지만 불법은 불법이니 판문점을 통과하자마자 그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안기부였습니다. 이후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지만 지금은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임종석 국회의원
관련 사건과 참여정부 당시 대북송금 특검수사에 적극 반대한 것 등 여러 가지 사유로 임종석 의원 주사파 분류로 평가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주사파는 북한의 통치이념인 주체사상을 추종하는 NL세력을 일컫는 말이라고 합니다. 대통령 비서실장까지 지낸 인물이 그 정도의 친북 세력은 아니겠죠?
국회의원 시절은 16대, 17대로 과거로 돌아갑니다. 1999년 16대 총선에서 서울 성동구 지역구에 출마해 한나랑 이세기 의원을 제치고 당선되며 국회에 입성합니다. 그리고 이후 17대 총선에서도 재선하며 2선 의원이 됩니다.
열린우리당 대변인도 하며 재선에 성공하지만 두각을 드러내는 의원 중 거물급에 이름을 올리지는 못했다는 평이 많습니다. 당시 임종석 의정활동 대부분은 국가보안법 폐지, 북한인권법 제정 반대, 대북 교류 사업 등에 초점이 맞춰지며 한정적인 활동에 국한되었습니다.
임종석 수상
2007년 NGO모니터단 국정감사 우수의원
2006 제8회 백봉 라용균 선생 기념사업회 백봉신사상
2006년 NGO모니터단 국정감사 우수의원
2005년 제7회 백봉 라용균 선생 기념사업회 백봉신사상
2005년 NGO모니터단 국정감사 우수의원
2005년 최고 의정활동 의원
2004년 제6회 백봉 라용균 선생 기념사업회 백봉신사상
2003년 제5회 백봉 라용균 선생 기념사업회 백봉신사상
2002년 제4회 백봉 라용균 선생 기념사업회 백봉신사상
2001년 NGO모니터단 국정감사 우수의원
2001년 의정한국을 빛낸 인물상
2000년 NGO모니터단 국정감사 우수의원
거물급 의원이 아니었다는 평가와는 달리 국정감사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우수의원에 여러 번 이름을 올리며 수상 이력도 가지고 있습니다.
임종석 지역구
총 세 번의 선거를 치렀습니다. 모두 서울 성동으로 2번의 당선과 낙선을 경험했습니다. 2008년 총선에서 당시 있었던 '뉴타운 열풍'으로 각종 재개발, 재건축 이슈에서 당 차원에서 한참 밀렸고 역시 한나라당 김동성 후보에게 밀려 낙선합니다.
다음 총선을 위해 당내 활동으로 재기를 노리며 당 사무총장에 임명되기도 했지만 정치자금법 문제로 결국 19대 총선 출마 자체가 좌절됩니다. 1심 판결이었기에 출마할 수 있었고 당에서도 완주하길 바랐으나 스스로 자진 사퇴했습니다.
이후 최종 무죄 선고를 받았습니다. 2014년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을 설립해 이사장으로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해당 재단 역시 북한 저작물 이용 저작권료를 북한에 지불하는 업무를 담당하며 친북 성향이라는 평가를 받는 곳입니다.
남북 협력과 공존, 번영을 외치며 새롭고 담대한 비전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인사말이 있습니다. '담대하다' 어디서 많이 보던 단어입니다.
이름 선거이력
ㆍ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선거구 서울 성동을 통합민주당 득표율 46.67% 낙선
ㆍ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성동을 지역구 열린우리당 득표율 49.61% 당선
ㆍ2008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선거구 서울 성동 새천년민주당 득표율 48.39% 당선
임종석 컷오프
박영훈 전량공관위원의 유튜브 발언이 민주당 시스템 공천이 시스템이 아니라고 스스로 입증한 셈이 되었습니다. 결국 박 위원은 책임을 지고 사퇴했습니다.
"임종석 실장께서 당에 무리한 요구를 하는 측면이 상당해 수용할 경우 전국 선거 판세가 흔들릴 우려가 있어 회의가 열리고 있다."라는 발언을 했고 이어 "내가 임 실장님이면 저한테 전화했겠다."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왜 전화를 해야 하나'는 질문에 "잘 봐달라고. 세 번 정도 전화하면 그때 받을 생각이다."라며 스스로 시스템 공천의 신뢰성을 무너뜨리는 발언을 해서 비판을 받았고, 결국 사퇴했다고 더불어민주당에서 밝혔습니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대선 패배 후 2년 동안 도대체 뭘 하셨죠?', '이재명 대표와 당원들이 다시 살려놓으니 갑자기 와서 자리 달라고 하네?', '정치 안 하고 북한과 통일 관련 일한다고 그러지 않았나?'라며 당을 위해 무슨 일을 했냐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임종석 평창동
제21대 총선 종로 출마설이 많았습니다. 특히 비서실장 퇴임 이후 종로구 평창동 전세를 얻으며 점차 기정사실화 되었습니다. 하지만 2019냔 11월 돌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습니다.
제도권 정치를 떠나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총선 불출마 및 정계 은퇴를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되었으며 이어 민간에서 통일운동에 전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미 에비후보 등록을 마치고 유세 운동에 한창이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고민정 최고위원이 공천 갈등과 관련해 최고위원직을 사퇴하기도 했습니다.
한때 가만히 있어도 승리할 것이라는 추측이 있기도 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점점 산으로 가는 형국이라는 말이 생기고 있습니다.
어느 당 할 것 없이 공천 관련 갈등은 있으니 막상 판을 까봐야 결과를 알 수 있게 될까요? 지켜보는 국민 입장에서는 나라를 위한 싸움인지 밥그릇 싸움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앞으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지켜봐야겠습니다. 행복하고 건강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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